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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계양구_기념물 이찰이율 형제정려

세종대왕의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인 전주이씨 이찰과 이율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곁을 떠나지 않으며, 백방으로 약을 구해 극진히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이 위독해지자 형제가 번갈아가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입에 넣어 드렸으나 끝내는 사망하여 묘막을 짓고 3년 간의 시묘를 살았는데, 이후 아버지께 못한 효도를 유감스럽게 생각하여 어머니를 더욱더 극진히 모셨는데 형제가 나이 40이 가까워오자 어머님 또한 노환으로 위독해지자 아버지께 하였던 대로 똑같이 행하였으나 보람없이 운명하자 애통해하며 장례를 치룬 후 다시 묘막을 짓고 3년 간의 시묘살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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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데이터명 인천광역시 계양구_기념물 이찰이율 형제정려_20220607
분류체계 문화체육관광 - 문화재 제공기관 인천광역시 계양구
관리부서명 홍보미디어실 관리부서 전화번호
보유근거 수집방법
업데이트 주기 수시 (1회성 데이터) 차기 등록 예정일
매체유형 이미지 전체 행 1
확장자 JPEG 키워드 이찰이율,기념물,사진
데이터 한계 다운로드(바로가기) 92
등록일 2022-06-07 수정일 2022-06-07
제공형태 공공데이터포털에서 다운로드(원문파일등록)
설명 세종대왕의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후손인 전주이씨 이찰과 이율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곁을 떠나지 않으며, 백방으로 약을 구해 극진히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이 위독해지자 형제가 번갈아가며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흘려 입에 넣어 드렸으나 끝내는 사망하여 묘막을 짓고 3년 간의 시묘를 살았는데, 이후 아버지께 못한 효도를 유감스럽게 생각하여 어머니를 더욱더 극진히 모셨는데 형제가 나이 40이 가까워오자 어머님 또한 노환으로 위독해지자 아버지께 하였던 대로 똑같이 행하였으나 보람없이 운명하자 애통해하며 장례를 치룬 후 다시 묘막을 짓고 3년 간의 시묘살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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